도─ 도─
분주한 퇴근길의 지하철을 기다리며 책을 들었다.
그래서 겨우 울었다는 도......의 울음을 듣기 힘들었다. 퇴근길의 특유의 짜증 속에 건반을 때려본 적도 없는 손가락을 무안하게 휘둘러가며 기다린 전철의 열리지 않을 거라 기대되는 문에 기대섰다.
한 손으로 작은 책을 들고 짝 다리를 짚으며, 서울메트로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은 시건방져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노닥거림처럼 내 어깨에서 어른거리는 수줍게 눈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과 그 이야기들에 무척 즐거워 졌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번의 환승역을 지날 때쯤 검은 빗물과 건반의 그것이 도#,─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다섯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반음 이 낮아져 있었다.
기대섰던 문에 갑자기 문이 열려 무안해진 나는 반대편으로 엉거주춤 섰다.
얼마 지난 후에 나의 입에도 침이 고일 것 같아 껌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운이 좋게도 껌이 하나 있었다.
자이리톨만 아니라 “노키아”도 있는 나라의 그것으로 만든 껌이라 그런지 반으로 쭉 찟어 먹는 아날로그적인 사치는 부리지 못했다. 껌을 씹으며, 나에게 희생된 순백의 껌이 단아하게 앉아있던 비어버린 캡슐을 보았는데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어있는 안락한 캡슐공간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를 위해서 비어있는 그 공간.
김애란 작가를 만나면 “갑이네”하고 공통점 하나를 쉽사리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는 그 능력 때문인지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피부에 빗물이 스며들 듯 공감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서 있어서 전철의 빈자리에 대한 미련이 피어 오르듯 내 한 몸 호젓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남과 적당한 여백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아쉽다.
하지만 어머니가 둥글게 둥글게 몸을 굴리며 나의 머리며, 심장이며, 창자를 쑥쑥 키위 냈던 그 공간이 그립고 그래서 공간을 가득 메우던 사람이 사라져 그 공간이 비어버리면 그 여백은 이내 서글퍼 진다.
지나가기 때문에 머물지 못하는 공간도 있고 그러한 사람도 있고.. 그래서 공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때쯤 전철은 신림을 지났다.
더욱 푸르러 보이는 2호선의 노선표이지만 달리는 전철의 공간은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표정부터 옷까지 무채색이었다. 나 또한 무채색의 외투를 입고 있으니 무채색의 콩나물 중에 하나이다.
콩나물도 푸른 잎을 펼칠 공간이 있어야 푸르지! 하며 변명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서울은 수도 이름값을 하듯 이처럼 공간하나 여유롭게 내어 주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무채색의 외투 속의 “바스락”거리는 껌의 초록색 포장지처럼 모두들 그 초록의 무엇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피워낼 공간이 필요하고 좀 더 자란다면 몸을 둥글게 굴려가며 작은 콩나물들의 성장을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껌이 아직 달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서울의 동에서 서를 횡단하는 동안 조근조근 이야기 들려준 김애란 작가의 글에 댓 글을 달고 싶다. “님 쩔어요”라던지, “님 쫌 짱인듯” 이라던지..
가능하다면 추천도 꾹 눌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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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침이 고인다
Tracked from Inuit Blogged 2008/05/10 17:26 delete김훈을 읽으면 일식 요리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감각적이지만 가지런하고, 화려한듯 단아합니다. 그리고. 허기 채우려 허겁지겁 먹기보다는 야금야금 곱씹는 맛을 즐기고 싶지요. 김애란 '우리 문단에 내린 선물' 운운하는 신문의 호들갑에서 김애란이라는 이름을 접하고 잠시 눈에 넣었다 바로 잊었고, 산나님 글로 다시 위시 리스트에 추가가 되었습니다. 희한하게도 김애란을 읽는데 김훈이 떠오르더군요. 문체는 다르고 글맛도 다릅니다만 강렬한 스타일이 닮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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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들 추천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서점에 갔을 때 선뜻 고르질 못하겠더라구요. '침이 고인다'라는 다소 무거운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웬지 부담되어서였습니다. 이 글을 보니 그런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물론 조금 무거운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좋은 책이네요. 다음에 서점에 가면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 적어도 칙칙하진 않습니다.
저에게 김애란 작가는 완전소중이지만.. ^^
무거운 것을 싫어하시면 박민규 작가의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이나, 이기호작가의 갈팡질팡하다 내이럴 줄 알았지 추천해 드립니다.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거 제목 정말 끌리네요~! 봐야겠어요. =)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건.. mariner님 좀 짱인듯. ^^;
책 만큼이나 멋진 리뷰네요.
'서울의 손금'같다던 지하철 안에서 읽은 김애란 작가. 즐거운 시간이셨겠어요.
김훈작가 책을 거의 읽지 못했는데...
inuit님 덕분에 앞으로 김훈작가님과 즐거운 시간도 기대되는데요.
저는 칼자국이 제일 좋았거든요.. ^^